난 피아노를 버렸다 / 해유



오늘의 난 피아노를 내 마음에서 벗어나 거리에 힘차게 던지고 말았다.
그동안 이 좁은 17평의 공간에서 같은 영혼으로 한 호흡이 되어
노래를 부르기도 때로는 몽환의 연인으로
내 성감대를 자극해 오르가즘을 느끼게 한 피아노가 갑자기 싫증 났다.
이유는 한가지다.
자꾸만 낮은 건반만 터치하며 장송곡을 울려대는 피아노가 내 뜨거운 피를 식게 하였으므로,

내동댕이친 피아노는 페달이 눌려진 채 건반을 밟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자국에서 쉼 없이 내 음감을 자극하며 또다시 유혹한다.
거리거리마다 또 다시 너와 나의 소나타가 끊어지지 않고
내 귓불을 간질이며 파샵파샵이라고 울부짖곤 하는 것 같다.
내 관절이 건반을 더듬듯 너의 가슴을 반음으로 더듬더듬한
치명적인 음 이탈을 남긴 건 아닌지, 내 인생에.
(오늘의 나는 저 피아노에 그냥 피아노는 피아노일 뿐이고,
단지 음악은 내 인생의 전부다라고 말하고 싶었다. 이상, 이하도 아닌.)
다 소용없다.
장송곡이 조율하지 못한 미완성된 인생을 대신하듯 구슬프게 울려 퍼지고,
거리의 사람들이 환각증세로 음에 취해 비틀거리며 스러진다 해도
이미 버려진 피아노의 울림통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없었기에
고흐의 정신적 행위로 창문을 세차게 닫아 버렸다.
더는 너를 위한,
나를 위한 소나타는 없다.
장송곡 또한 필요치 않다.
음악은 없다.
더는 피아노를 연인으로 우대하지 않겠노라고.
30년을 손 섞어 살아온 피아노와 이혼 도장 찍고
이 공간을
내 목소리와
내 체취로 채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