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것이 좋아

감독 : 권칠인│출연 : 이미숙, 김민희, 안소희

국내 등급 : 15세 관람가│개봉 : 1월 17일

폐경을 맞은 여자 영미(이미숙)는 매일같이 거실의 러닝머신에서 뛴다. 결혼이 하고 싶은 건지, 연애가 하고 싶은 건지 모르는 아미(김민희)는 회계사 부인자리를 잡기 위해 직업과 신분을 위조하려 한다. 사랑이 필요한 건지 아니면 단지 외양을 장식해줄 남자 친구가 필요한 건지 헤매고 있는 강애(안소희)는 사랑보다 두근거리는 우정 앞에 당황한다. 애 딸린 싱글 영미와 언니 집에 얹혀사는 동생 아미, 철없는 이모와 엄마를 챙기며 살림을 사는 딸 강애 등 모계 가족의 세 여자를 주인공으로 설정한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는 영문을 모른 채 뜨겁게 달아오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본심을 알아차리기 전까지 쿨한 제스처와 냉소적인 담배연기만이 가득하게 퍼진다. 90년대 후반 연애담을 장식했고, 2000년대 초반까지 소위 능력 있는 커리어 우먼들의 에티켓이라 칭해졌던 요소들이 세 여자들의 일상을 구성한다.

세 여자의 고민에 고개를 끄덕일 수 없는 이유
여자가 들키면 안되는 것 세 가지. 바람, 주름, 속마음. 아미의 나레이션처럼 <뜨거운 것이 좋아>는 영화가 후반부에 이르기 전까지 영화의 속마음을 감춘다. 감추기 위해 바람 피고, 또 감추기 위해 장식한다. 극단의 20대 남자 배우와 모텔에 들어가는 40대 중년의 영미에게 섹스는 가볍게 오케이지만 사랑은 귀찮은 간섭이다. 그렇게 쿨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녀가 중학생 딸을 둔 싱글이 된 사연이 어떤 건지 영화는 설명하지 않는다. 굳이 따져보자면 돈? 아미와 강애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인물들의 방황을 안에서 밖으로 따라가지 않고, 밖에서만 과장을 부리며 맴돈다. 전형적인 타입(단정한 수트의 회계사, 방황하는 록 밴드 보컬, 오토바이를 타는 피자집 아르바이트생)에 묶인 남자 캐릭터들은 세 여자의 허세를 받아줄 일종의 장치다.

그래서 그녀들은 현실적이지 않다. 오히려 영화가 조금의 울림이라도 자아내는 장면은 남자들의 현실이 담긴 실패의 순간이다. 그리고 아미와 강애가 자신의 밑바닥에 가장 가깝게 다가갔던 각자의 마지막 엔딩 정도. 하지만 영화는 다시 생리에 성공한 영미의 에피소드를 주축으로 세 여자의 일상을 과하게 부풀린다. 마치 거리가 보이는 테라스에 앉기 위해 커피숍에 들어간 사람들처럼 <뜨거운 것이 좋아>는 ‘보이기 위한 라이프 스타일’의 스케치 같은 영화다. 하지만 별로 새롭지 않은 스케치에 본심이 없으니, 영화가 그다지 뜨거울 리는 없다.